목차
유목의 민족, 아리아인의 남하
지금으로부터 약 3,500년 전, 기원전 1500년 무렵, 중앙아시아의 드넓은 초원을 누비던 유목민 아리아인이 남쪽으로 이동을 시작합니다.
그들은 말을 능숙하게 타고, 철제 무기를 사용해 강력한 군사력을 자랑하며 인더스강 유역으로 밀고 들어왔습니다. 이미 이곳에 자리 잡고 있던 인더스 문명을 밀어내고, 아리아인들은 목축과 농경에 바탕을 둔 새로운 삶을 정착시키기 시작했지요.
자연 속 신을 노래하다 – ‘베다’의 탄생
아리아인들은 자연을 신처럼 여기고 숭배했습니다. 하늘, 불, 물, 바람, 태양 등 자연의 힘을 찬양하는 노래를 지어 전해왔는데, 그것이 바로 **‘베다(Veda)’**입니다.
베다는 단순한 찬가 모음이 아니라, 자연신에 대한 믿음과 의식, 그리고 아리아인들의 생활과 문화를 담은 귀중한 기록이 되었습니다.
점차 복잡해지는 제사와 의식을 이끌기 위해, 사람들은 전문적인 종교 지도자를 필요로 하게 되었고, 이들이 바로 **브라만(Brahman)**이었습니다. 이 브라만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종교가 브라만교이며, 인도의 종교와 사회에 깊은 뿌리를 남기게 됩니다.
다스리기 위한 체계 – 카스트 제도의 탄생
아리아인들은 자신들과 외모나 언어가 다른 인도의 원주민, 드라비다족을 다스리기 위해 계급제도, 즉 카스트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이 제도는 태어날 때부터 신분과 직업이 정해지고, 그대로 대물림되었으며, 다른 계급과 함께 밥을 먹거나 결혼하거나 거주하는 것조차 금지되었습니다. 차별은 단순한 사회구조가 아니라, 삶의 모든 규범이자 법칙이 되었던 셈입니다.
카스트 제도의 네 계급
브라만 (Brahman) – 가장 높은 사제 계급
종교와 신전, 학문을 맡았던 사람들로, 신과 가장 가까운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베다의 지식과 제사 의식은 오로지 그들의 몫이었지요.
크샤트리아 (Kshatriya) – 왕과 전사들
정치를 이끌고, 전쟁과 국방을 책임졌던 왕족과 귀족 계급입니다.
나라를 지키고 다스리는 중요한 권한을 가지고 있었지만, 종교적으로는 브라만보다 아래였습니다.
바이샤 (Vaishya) – 상인과 농민들
상공업과 농업에 종사하며 경제를 떠받친 계급입니다.
세금을 내고, 일상생활을 이끌었지만, 위 계급들과는 분명한 거리감이 존재했습니다.
수드라 (Shudra) – 하층 노동자
주로 잡일이나 허드렛일을 맡은 계급으로, 종교 의식에조차 참여할 수 없는 위치였습니다.
이들은 종종 인간으로서의 대우도 제대로 받지 못했습니다.
그 아래, 이름조차 부정된 존재 – ‘불가촉천민’
수드라보다 더 아래 계급으로, **‘불가촉천민’**이라는 이들은 공식적인 카스트 계급에도 속하지 못했습니다.
이들은 사람들로부터 **“만지기조차 꺼려지는 존재”**로 여겨졌으며, 시체 처리, 가죽일, 배설물 청소 같은 사회가 기피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평생 차별과 배제 속에 살아야 했던 이들은, 인도 사회에서 오랫동안 고통받는 계층으로 남게 됩니다.
신앙과 지배가 뒤얽힌 사회
아리아인의 이동은 단순한 인구의 이동이 아니라, 기존 문명의 변화와 새로운 사회 질서의 탄생을 의미했습니다. 자연을 향한 노래였던 베다는 종교가 되었고, 종교는 곧 계급을 정당화하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그 속에서 생겨난 카스트 제도는 수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인도 사회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지요. 한 시대의 이동이 만들어낸 복잡하고도 인상 깊은 문화의 흐름, 그것이 바로 아리아인과 카스트 제도의 이야기입니다.
찬란한 문명, 갑작스러운 침묵
기원전 2500년경 번성하던 인더스 문명은 어느 날 갑자기 기원전 1500년 무렵, 역사 속에서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폭이 넓고 반듯한 도로, 정교한 배수 시설과 하수도, 가정마다 마련된 작은 욕실과 수세식 화장실까지… 당시로서는 놀라운 수준의 도시 문화를 이루었던 이 문명이 왜, 그리고 어떻게 사라졌을까 하는 물음은 오랜 시간 인류의 관심을 끌어온 미스터리입니다.
비록 확실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여러 가지 흥미로운 가설들이 제시되어 왔습니다.
가설 하나 – 침략의 그림자
가장 오래된 가설 중 하나는 중앙아시아에서 내려온 유목민 아리아인의 침략입니다.
실제로 모헨조다로에서 발견된 일부 유골에서 무기로 인한 손상 흔적이 남아 있어, 사람들이 예고 없이 공격당해 희생된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흔적은 문명의 몰락이 평화로운 쇠퇴가 아닌, 폭력적인 충돌로 인한 결과일 수도 있다는 단서가 됩니다.
가설 둘 – 인간과 환경의 갈등
또 다른 시선은 환경 변화와 과도한 개발에 주목합니다. 지속적인 농경과 목축으로 인해 땅이 지력(地力)을 잃고 황폐해졌을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또, 건축용 벽돌을 굽기 위해 많은 나무를 사용하면서 산림이 고갈되고 생태계가 무너진 것이 결국 자연재해와 농업의 위기로 이어졌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인간의 손이 지나치게 닿은 자연, 그것이 문명을 삼켜버린 셈이죠.
가설 셋 – 자연의 분노, 천재지변
인더스 문명의 주요 도시는 큰 강 주변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거대한 홍수나 지진이 도시를 덮쳤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만약 한 번의 홍수가 도시 전체를 덮쳤다면, 수로와 건축물은 물론,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 모두 사라졌을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대자연의 재앙은 사람들의 이주를 불러왔고, 도시는 점차 사람의 발길이 끊긴 폐허로 남게 되었을지 모릅니다.
서서히… 침묵 속의 쇠퇴
일부 학자들은 인더스 문명이 단번에 사라진 것이 아니라, 서서히 힘을 잃어갔을 것이라 추측합니다. 농업 기반의 붕괴와 지배 체계의 약화, 그리고 다른 민족의 침입이 점진적으로 겹치면서 문명이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즉, 인더스 문명의 종말은 하나의 큰 사건보다는 여러 가지 변화와 위기가 쌓여 만든 결과일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초중고 공부 >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청동의 시대, 문자로 남은 기억 – 은나라 이야기 (0) | 2025.04.13 |
---|---|
중국 역사의 출발. 삼황오제의 영웅들 신화에서 문명으로 (0) | 2025.04.12 |
물에 대비한 벽돌도시 인더스 문명 사람들 (0) | 2025.04.11 |
이집트사람들이 만드는 미라 (0) | 2025.04.10 |
왕가의 계곡에서 발견된 거대 피라미드 투탕카멘 (0) | 2025.04.09 |